(1) 바람이 울부짖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 이철 역(2007), 예브게니 오네긴, 신원문화사. 343페이지.
바람이 울부짖는 날씨에 눈이 내리면 어떻게 될까? 그건 아마도 '눈보라'처럼 "바람에 불리어 휘몰아쳐 날리는 눈"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함박눈이 '펄펄' 내리다면 모를까, '펑펑' 내리지는 못한다. 부사 '펑펑'은 "눈이 세차게 많이 쏟아져 내릴 때" 사용하고, '펄펄'은 "눈이 바람에 세차게 날릴 때" 사용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에
함박눈이 펑펑 내려 온천지가 눈으로 덮여 있었다. - 박삼중(2006), 가피, 열매출판사. 38페이지.
함박눈은 눈이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밤새 내린 눈을 함박눈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설령 잠들기 전에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더라도, 잠든 사이에 함박눈이 포슬눈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밤사이에 사람들이 모르게 내린 눈"이란 뜻으로 '도둑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떨까?
(3)
함박눈이 퍼부었다. 눈송이가 얼마나 크던지 땅바닥으로 떨어질 때마다
툭툭 소리가 났다. - 김남길(2006), 오두막 일기, 세상모든책. 146페이지.
땅바닥에 떨어져 툭툭 소리를 낼 정도라면 '함박눈'이라고 보기 어렵다. 눈에 비가 섞이지 않는 이상 그런 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함박눈"을 '싸라기눈'이나 '우박'으로 바꾸어 표현하거나 "툭툭 소리가 났다."를 "툭툭 소리가 나는 듯했다."로 바꾸어 표현해야 할 것이다.
눈의 이름이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눈이 펑펑 내린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우숩지만, 눈만 내렸다 하면 무조건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우숩다. 이제부터라도 '길눈'이나 '자국눈'처럼 주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단어들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사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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